실제 업장에서 파스타를 스텝밀로 하거나 저렴한 파스타집에서 파스타를 먹으면 에멀전이 안 돼있는 두 가지 경우를 모두 볼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소스에 수분이 너무 많아서 물처럼 묽은 경우,
두 번째는 수분은 다 날아가고
기름기만 있어서 느끼하고 뻑뻑한 경우이다. 물론 맛을 내는 액체에는 여러 가지 농도가 있을 수 있지만 위 두 가지 경우들은 보통 95% 확률로 잘못된 농도였다.
이번 시간에서는 파스타의 종류별로 에멀션(emulsion) 하는 방식과 맛의 차이에 대해서 설명해보려 한다.
1. 에멀션(emulsion)의 의미 : 유화
몇 년 사이에 유튜브에서 흔히들 만테까레 라고하면서 화구의 불을 끄고 프라이팬을 흔들어서 파스타를 섞는 영상이 많이 나왔는데 이게 에멀션(emulsion)이다.
(만테카레=에멀션=유화) 유화작용은 원래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이 섞여있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디테일하게 나누면 물분자 속에 기름이 섞이는 경우, 기름분자 속에 물이 섞이는 경우 두 가지가 있으나 깊게 알필요는 없는 것 같고 간단하게 몇 가지 조건만 알고 있으면 될 것 같다.
- 보통 8:2 정도의 비율일 때 유화가 잘 된다.
- 유화제가 있으면 유화가 더 잘 된다.
- 너무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온도에서 잘된다.
2. 오일파스타
가장 대표적인 경우로 알리오올리오를 생각하면 되고
마지막에 버진오일 말고 버터를 넣는 경우도 같은 원리가 된다.
보통 팬에 맛을 내는 재료들을 기름에 볶다가 액체류를 넣고 살짝 덜 익은 면을 넣고 익힌다. 그 후 면이 다 익으면 오일을 넣고 잘 섞어주는 것이 오일파스타를 하는 큰 틀이 된다. 이제 하나하나 뜯어보자.
(1) 처음 재료를 볶기 위해 기름을 넣을 땐 재료가 볶이고 향을 잡을 수 있을 만큼만 최소한으로 넣는다.
어차피 마지막에 유화를 위해 그리고 최종적인 향을 위해 버진오일을 뿌려줄 것이 예정돼 있기 때문에 굳이 불필요한 기름양을 늘릴필요는 없다.
(2) 살짝 덜 익은 면을 넣은 이유는 파스타 소스에 전분기를 추가하기 위함이다.
그렇다고 한참 덜 익은 면을 가져오는 건 아니고 완전히 익기 1~2분 정도 이전상태의 면을 꺼내서 팬으로 가져오면 된다.
이때 면에서 나오는 전분이 파스타의 가장 큰 유화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래서 굳이 덜 익은 면을 넣지 않더라도 파스타 삶은 물을 소스에 추가하면서 면을 익혀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다만 너무 많은 양의 전분이 들어가면 파스타가 아니라
칼국수에서 나는 밀가루의 텁텁한 맛이 날 수도 있다.
(3) 파스타삶은 물을 넣지 않고 치킨스톡이나 여러 가지 육수들을 넣을 수도 있다.
마지막에 정리글로 언급하겠지만 결국 에멀전의 최종목적은 농도를 만들기 위함이기 때문에, 직접 뼈로 만든 육수가 아니라 시판 가루제품을 쓰면 면수를 쓸 때보단 맛은 좋아질 수 있겠지만 농도를 추가하는 데는 도움을 주지 못한다.
(4)그리고 마지막으로 면이 다 익으면 버진오일이나 버터를 넣는데 이때 중요한 건 오일의 양과 소스의 온도이다.
그렇다고 엄청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쉽게 생각해서 삶기 전 파스타면 무게 75g 기준 버진오일의 경우 수저로 3스푼 정도, 버터는 크게 1스푼 정도면 충분한 양의 기름양이 된다.
이 이상 넣게 되면 풍미는 더 오르겠지만 초과된 기름양만큼 더 기름져질 수 있다.
만약 집에서 이 정도의 기름양을 넣었는데 유화가 잘 안 된다면 오일을 넣기 전에 수분의 양이 많았을 확률이 가장 높고, 전분기가 조금 부족했을 수도 있다.
(5) 소스의 온도는 너무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정도면 된다.
이 온도를 맞추기 위해서 보통 불을 끄고 프라이팬을 앞뒤로 막 흔들면서 에멀션을 시도하는데 이건 화력이 센 불을 쓰는 업장의 경우엔 뜨거운 열을 식혀야 해서 의미 있는 행동이지만 집에서 하는 건 별로 의미가 없다.
이미 집에서 쓰는 화구의 화력이 그렇게 세지 않기 때문에 그냥 불을 좀 줄이고 오일을 넣고 젓가락으로 강하게 섞어주기만 해도 유화가 잘 일어날 것이다.
3. 토마토파스타
이경우는 토마토소스를 사용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미 사용하는 토마토소스의 농도가 잘 잡혀있는 경우엔 사실 오일파스타에서 한 것처럼 다양한 요소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농도가 잘 잡힌 토마토소스를 넣는 순간 수분만 적당히 날려주면 알아서 농도가 잡히기 때문에 마지막에 풍미를 더해주는 용도로 버진오일이나 버터를 넣어서 섞어주만 하면 된다.
4. 크림파스타
크림파스타의 경우엔 할 말이 많지만 결론만 말한다면크림파스타라고 크림만 왕창 부으면 안 된다.
그러면 동네 배달전문 파스타집의 정말 묽은 농도가 나온다.
사실 이건 오일파스타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육수 없이 파스타 맛을 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고(미원제외)
유화작용을 일으킬 때도 수분이 그 정도로 많으면 유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크림맛이 좋아서 크림만 왕창 넣으면 진짜 크림맛밖에 안나는 파스타가 된다.
5. 에멀전의 최종목적 : 농도
글을 쓰는 중간중간 나왔지만 파스타를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면과 소스가 에멀션(emulsion)을 통해
진한 농도를 가져서 면을 들어 올릴 때 소스가 같이 붙어서 딸려오는 상태”이다.
파스타의 소스는 면 안으로 스며들지 않는다.
단지 겉에 묻을 뿐이다.
그래서 에멀션(emulsion)을 통한 농도를 만드는 게 중요한 것이다.
농도를 이해하는 건 조금 더 많은 지식이 필요하지만
쉽게 생각해서 파스타에서 농도를 잡을 수 있는 것들은
다진 양파, 마늘, 치즈가루, 노른자, 잘 만든 치킨스톡,
등.. 입자가 곱게 갈려진 것들이나 약간의 지방성분,
물에 녹은 단백질(=콜라겐, 마이야르 화합물,…), 등
전분기 말고도 다양한 것들이 있다.
농도를 만들어야겠다는 관점으로 다시 지금 만들고 있는 파스타를 바라보면 왜 지금 남들처럼 유화가 잘 안 되는지 바로 파악될 수도 있다.
면은 다 익었지만 팬에 물기가 가득할 때 오일을 넣으면 당연히 수분이 너무 많아서 농도가 안 생기며, 그렇다고 수분을 너무 날려버리면 유화될 수분이 없어서 농도가 생기는 게 아니라 기름만 둥둥 떠다닌다.
농도가 제대로 잡힌 것과 그렇지 않은 파스타를 먹는 경우를 상상해 보면 맛의 차이는 상당하다.
6. 파스타의 맛 : 소스
”집에서 알리오 올리오를 했는데 식당에서 파는 맛이 안 나고 기름맛밖에 안 나요 “ 하고 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다.
마늘, 기름, 물 밖에 안 넣으면 당연히 그 맛밖에 안 난다.
추가로 넣는 면수는 단지 농도를 위한 것일 뿐 맛을 올려주지는 못한다.
파스타를 잘하려면 농도도 잘 잡고, 면도 잘 삶아야겠지만 결국 중요한 건 소스의 맛을 잘 만들어 내는 것이다.
파스타는 면과 소스로 구성돼 있다. 소스를 맛있게 만들면서 농도도 같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게 바로 업장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뼈로 만든 스톡들이다.
그래서 애초에 스톡을 잘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고,
집에서 할 때는 일이 너무 복잡하니 화학조미료로 맛을 내고, 면수로 농도를 잡아야 할 것이다.
저렴한 배달 파스타집들의 파스타 농도가 묽은데 맛이 강한 이유는 스톡을 쓰지 않고 물에 화학조미료만 섞어서 사용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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